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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의 태화강국가정원에 있는 만회정과 선조들의 흔적이 새겨진 글자 관어대와 그림, 시를 실물로 찾아보고 임진왜란에 세운 공을 기록으로 숨결을 느껴 봅니다. c1ssam
시니어경제 2024. 1. 25. 08:10목차
오산(鰲山) 만회정(晩悔停)
내오산(內鰲山)에(鰲山) 만회정(晩悔停)이 있습니다. 오산(鰲山)이라는 명칭은 얕은 구릉 정도의 산입니다. 울산 중구 태화동 행정복지센터에서 제공하는 지명의 설명을 참조하여 작성해 봅니다.
우선 찾아가는 발걸음을 도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태화강의 북쪽 편에 있는 태화루 아래의 공원길을 쭈욱 따라가다 보면 반대편 강남 쪽으로 남구 삼호동의 태화강조망대가 나옵니다.
조망대길을 따라서 500여m 정도를 더 가면 중구 명정천이 우측에서 내려오는 곳 머리 위로는 '이예로'가 있는 곳이 만회정이 있는 곳입니다.
머리 위로는 울산 북구 농소동 오토밸리로에서 남구 옥동 남부순환도로까지 남산을 관통하고 태화강을 가로지르는 새 도로인 '이예로'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울산 중구 태화동 행정복지센터에서 제공하는 내오산(內鰲山)과 만회정의 이력
내오산은 오산 (鰲山) 안쪽에 있는 산이다. 오산대밭(鰲山竹林)의 서쪽에 있는 나지막한 산으로 삼산(三山)과 오산(鰲山)이 대칭으로 한 이 산을 내오산이라 부른다. 거북이(鰲)같이 생겼다는데서 유래한 것이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에 의병장이었던 박홍춘에게 남산십이봉 (南山十二峯)과 멍정에서 삼동까지의 30리에 달하는 태화강(太和江) 방전(鱷魚防箭)·오산죽림 백여 경(頃), 멍정전결 (末亭田結) 수십 두락(斗落: 마지기)을 하사하였다 하는데 내오산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에 그의 손자 박취문이 만년에 만회정을 지었으나 1880년대에 폐허가 되었다가 2011년 다시 복원되었다. 봄, 여름, 가을 없이 여기에서 풍류를 즐겼다. 태화강 행정복지센터의 홈페이지에 기록되어 있는 설명입니다.
임진왜란 의병장으로 활약하였던 박홍춘
기록에 의하면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활약하였던 박홍춘에게 하사하였다 하니 대단한 공을 세웠던 것 같습니다. 당시 의병장의 기록과 유산인 환도가 울산광역시 유형문화재로 등록이 되어 있습니다.
울산의 임진왜란 의병장인 울산박씨 박홍춘(朴弘春, 1537~1601)은 선조로부터 환도를 하사 받았으며 사용했던 칼과 칼집은 후손들이 보관하다 기증을 합니다.
박홍춘은 호가 학수당이며, 무과에 급제한 후 언양현감을 역임했습니다. 임진왜란 시기 창의하여 공을 세웠으며, 선무원종공신 1등에 녹훈되었습니다. 환도는 대대로 후손에게 전래되어 왔으며, 박홍춘의 아들 박계숙과 손자 박취문이 쓴 일기인 『부북일기』와 함께 2010년 8월 울산박물관에 기증 되었습니다. 울산광역시 남구 문화체육과에 확인하였습니다.
만회정(晩悔停)은,
이러듯 역사적으로 고증되어 있는 만회정(晩悔停)은 조선중기 여러 지역의 부사를 역임한 만화 박취문(1617~1690)이 말년에 말응정 마을 앞 오산(鰲山) 기슭에 세운 정자(亭子)로 휴식및 교우를 위하여 세웠다. 1880년대에 소실된 것을 2011년 울산광역시가 새롭게 중건하였습니다.
원래 만회정은 정면 3칸, 측(옆)면 2칸의 규모로 마루를 중심으로 온돌과 툇마루로 구성되었던 것이 새롭게 중건한 만회정은 울산시민들의 편의를 위하여 하나의 마루로 구성하였습니다.
만회정 주변의 바위에는 관어대(觀魚臺) 글자, 자라그림, 시(時) 등이 새겨져 있는 있는데 선조들의 흔적을 느껴 볼 수가 있겠습니다.
울산의 태화강국가정원에 있는 만회정과 선조들의 흔적이 새겨진 글자 관어대와 그림, 시를 실물로 찾아보고
임진왜란에 세운 공을 기록으로 숨결을 느껴 봅니다. c1ssam